라이프 / / 2025. 5. 22. 17:27

크리슈나무르티의 이상과 현실, 정치 없는 자유는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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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체제 바깥에서 산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의 철학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아마 이렇게 표현될 것입니다. 그는 국가, 이념, 조직을 “심리적 감옥”이라 비판하며, 진정한 변화는 오직 개인의 내면적 각성에서 온다고 역설했습니다. 투표도 하지 않았고, 정치적 운동이나 제도에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그는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연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크리슈나무르티가 강연을 하며 자유롭게 세계를 누빌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만약 그가 주장한 대로 모든 국가와 체제가 불필요하다면, 그의 강연은 과연 테러나 강도의 위협 없이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그의 철학은 이상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현실에서는 국가와 정치적 시스템의 보호 없이는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글에서는 크리슈나무르티의 탈정치 철학과 그 모순을 살펴보고, 우리가 그의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철학 - 자유와 탈정치의 이상

크리슈나무르티는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인간의 자유와 내면의 혁명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죠.

 

“타인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나 자신부터 자유로워져라.”

 

그는 모든 외부의 권위(국가, 종교, 이념)를 거부하며,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려면 내면의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정치적 참여나 제도적 개혁을 믿지 않았습니다. 투표는 물론, 어떤 정치적 운동에도 관여하지 않았으며, 조직화된 체제를 “인간을 얽매는 족쇄”로 보았습니다.

 

그의 강연은 세계 곳곳에서 열렸습니다. 인도, 영국, 미국, 호주 등 다양한 나라에서 수많은 청중이 그의 말을 들으러 모였죠. 그는 국가나 제도가 아닌, 개인의 의식 변화를 통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메시지는 듣기에 근사합니다. 누가 자유와 내면의 성찰을 강조하는 목소리에 매력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의 삶과 철학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현실과의 간극이 드러납니다.

 

현실의 모순 - 국가의 보호 아래서의 자유

크리슈나무르티의 강연이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국가와 정치적 시스템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가 세계를 다니며 강연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권, 비자, 교통 인프라, 그리고 무엇보다 경찰과 군대 같은 안보 체계가 있었습니다. 만약 강연 중 테러나 강도의 위협이 현실화되었다면, 그의 메시지는 청중에게 전달되기도 전에도 중단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예를 들어, 크리슈나무르티는 영국 제국의 보호 아래 인도에서 교육받고, 세계 곳곳으로 여행하며 강연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활동은 당시 국제 사회의 안정된 질서와 법적 보호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만약 그가 완전히 국가 없는 세상에서 강연을 시도했다면, 과연 어땠을까요? 강연 장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위험에 처했을지 모릅니다. 심지어 그의 강연을 기록하고 배포한 책과 자료들 역시 출판사, 도로, 항구 등 국가가 제공한 인프라를 통해 세상에 퍼져나갔습니다.

 

이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철학이 가진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냅니다. 그는 국가와 체제를 거부했지만, 그의 삶과 메시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체제의 안정성에 의존했습니다. 만약 그가 테러나 공격을 당하는 상황을 겪었다면, 그의 철학이 현실에서 얼마나 취약한지 깨달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그가 체제 바깥에서 자유로웠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체제 안에서 보호받으며 자유를 누렸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왜 이 모순이 중요한가?

크리슈나무르티의 철학은 내면의 자유와 성찰을 강조하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탈정치적 태도를 맹목적으로 따를 경우, 우리는 현실의 책임을 외면할 위험이 있습니다. 정치는 때로 복잡하고 지저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부패한 정치인, 이해관계의 충돌, 관료주의는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죠. 하지만 정치적 시스템이 없다면, 우리가 누리는 기본적인 안전, 교육, 의료, 심지어 사상을 표현할 자유조차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크리슈나무르티가 강연에서 자유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표현의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억압적인 독재 체제 아래 살았다면, 그의 강연은 금지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정치적 참여와 제도가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줍니다. 투표, 법 제정, 시민의 참여는 단순한 형식적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자유롭게 사상을 나누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크리슈나무르티의 철학을 따르는 이들이 투표나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며 “내면의 변화”만을 강조한다면, 이는 무책임한 이상주의로 흐를 수 있습니다. 세상은 내면의 성찰만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여성의 투표권, 노동자의 권리, 소수자의 평등은 철학적 깨달음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정치적 투쟁과 참여로 이루어졌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가 테러나 위협을 겪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그 안전이 정치적 시스템의 보호 덕분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크리슈나무르티의 철학을 무작정 비판하거나, 반대로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모두 위험합니다. 그의 메시지는 내면의 자유와 성찰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하지만 그 자유가 현실에서 유지되려면, 정치적 참여와 책임이 필요하다는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이상을 배우되, 현실의 책임을 함께 감당하는 균형 잡힌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투표는 단순히 한 표를 던지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세상의 방향을 선택하는 행동입니다. 지역사회 활동, 정책에 대한 관심, 법과 제도에 대한 비판적 참여 역시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중요한 일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가 테러나 공격을 당하지 않은 것은 그의 행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가 살았던 세상의 정치적 안정 덕분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철학을 통해 내면을 성찰하되, 그 성찰이 현실의 행동으로 이어질 때 더 큰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은 철학으로 깨어나고, 행동으로 바뀝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철학은 우리에게 자유와 내면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하지만 그의 탈정치적 태도가 현실에서 완전히 실현 가능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가 안전하게 강연을 하고, 세계를 다니며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와 정치적 시스템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테러나 강도의 위협 없이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비판했던 체제의 안정성 덕분이었습니다.

 

그의 철학은 여전히 가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현실에서 살리려면, 내면의 성찰과 정치적 책임이 함께 가야 합니다. “그저 조용히 살고 싶다”는 바람은 이해할 만하지만, 그 조용함조차 누군가의 노력과 시스템 위에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 다음번 투표일이나 사회적 참여의 기회가 올 때, 잠시 멈춰 생각해 보세요. 당신의 작은 행동이, 그리고 한 표가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자유를 꿈꾸되,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한 현실의 책임도 함께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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