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크리슈나무르티의 마음의 눈으로 본 정치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살아냅니다. 때로는 고요히 내면을 살피고, 때로는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찾습니다. 불교의 오랜 가르침 속에서 평온을 얻기도 하고,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날카로운 질문 속에서 스스로를 일깨우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유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되며, 이는 곧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그리고 '어떤 리더가 그 세상을 이끌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됩니다.
과거의 고승들이나 크리슈나무르티께서 오늘날 특정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분들은 아마도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의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하며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넘어선 보편적인 진리를 향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분들의 말씀 속에는 인간 본연의 문제, 권력의 속성, 그리고 진실과 윤리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통찰을 통해 우리는 어떤 정치적 행태가 인간의 고통을 야기하고 진정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독재, 거짓말, 그리고 사법 리스크와 같은 문제들이 바로 그 예시일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가장한 입법독재
'독재'라는 단어는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총칼을 앞세워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한 사람 혹은 소수 집단이 모든 권력을 휘두르는 과거의 군사 독재는 가장 직접적인 형태의 폭력입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권력과 명예에 대한 극심한 집착(탐욕)과 아만(어리석음)이 빚어낸 비극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자비심(자비의 결여) 없이 자신의 의지만을 관철하려는 행위는 결국 더 큰 고통과 갈등이라는 부정적인 업(karma)으로 되돌아옵니다. 인간 존재 모두의 평등함과 존엄성을 부정하는 이러한 시스템은 불교의 근본 가르침에 어긋납니다.
그런데 독재의 얼굴은 시대에 따라 변모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의 절차와 형식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결의 원칙을 방패 삼아 소수 의견을 묵살하고, 정당한 숙의 과정이나 견제 장치를 무력화시키며, 특정 세력의 이익만을 위해 일방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행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듣곤 합니다. 이른바 '입법 독재'라고 불리는 이러한 모습은 민주주의의 외형 속에 숨어 권력을 전횡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로 비판받기도 합니다.
크리슈나무르티 사상으로 볼 때, 이러한 입법 독재 또한 경계해야 할 권력의 오남용입니다. 그는 어떤 형태의 외부 권위(정치적, 종교적, 사회적)에도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입법 독재는 압도적인 다수의 힘을 빌려 다른 목소리들을 침묵시키고, 비판적 사유나 다양한 관점의 교환을 방해합니다. 이는 대중을 특정 당파나 이념에 대한 조건화 속에 가두고, '있는 그대로'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이라는 조건화에 갇혀 공동체 전체의 안녕보다는 자신들의 지배력 유지에 몰두할 때 이러한 그림자 독재가 가능해집니다. 크리슈나무르티라면 이러한 시스템이 인간 정신의 자유로운 탐구를 억압하고 진실을 향한 길을 왜곡한다는 점에서 강하게 비판하셨을 것입니다.
진실의 왜곡, 거짓말이 만드는 불신과 고통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 규범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不妄語)입니다. 거짓은 관계의 신뢰를 파괴하고, 현실을 왜곡하여 어리석음과 고통을 야기하는 직접적인 악업입니다. 특히 공적인 위치에 있는 지도자의 거짓말은 그 파급효과가 커서 사회 전체의 소통과 협력을 마비시키고, 국민들로 하여금 무엇을 믿고 따라야 할지 혼란에 빠뜨립니다. 진실 위에 서지 않은 리더십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 또한 진실을 보는 것('있는 그대로'의 직시)과 진실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그는 거짓말이 외부와 내면의 불일치, 즉 비통합적인 삶을 나타내며, 스스로를 속이는 동시에 타인을 속이는 행위라고 보았습니다. 거짓말은 두려움, 탐욕, 명예욕 등 내면의 조건화에서 비롯되며, 진실을 외면하고 현실을 왜곡하려는 시도입니다. 지도자의 거짓말은 대중의 눈을 가리고 조종하려는 의도로 비춰질 수 있으며, 이는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려는 노력에 대한 모욕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라면 권력을 유지하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진실을 희생하는 행위를 매우 심각하게 보셨을 것입니다.
사법 리스크, 행위의 그림자와 윤리적 책임
사법 리스크는 종종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거나 윤리적으로 문제 되는 과거 행위의 결과로 현재에 나타나는 그림자입니다. 불교는 모든 행위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른다는 철저한 인과응보, 즉 업의 원리를 강조합니다. 사법 리스크는 지도자의 과거 행위가 공동체의 윤리적 기준이나 법적 질서를 위반했을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며, 이는 부정적인 업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부패, 권력 남용, 불법적인 이익 추구 등과 관련된 사법 리스크는 탐욕과 어리석음이라는 번뇌에 기반한 행위의 발현이며, 이는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개인이 자신의 행위와 그 결과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사법 리스크는 지도자의 내면적 무질서(욕망 제어 실패)나 과거의 잘못된 선택이 법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진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이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통합성(Integrity)과 윤리적 책임감이 결여되었음을 보여주는 증표입니다. 자신의 과거 행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공동체 전체를 이끌고 미래의 책임을 질 수 있겠습니까. 크리슈나무르티라면 사법 리스크를 단순히 법률적인 문제로만 보지 않고, 인간 내면의 혼란과 그로 인한 비윤리적인 행위가 외현화된 결과로 보며 깊이 성찰을 촉구했을 것입니다.
마음을 따르는 정치적 선택
불교와 크리슈나무르티의 가르침은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살아가는 '어떤 방식'이 깨달음으로 나아가고 고통을 줄이는 길인지를 제시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권력을 독점하려 하거나(어떤 형태의 독재든), 습관적으로 진실을 왜곡하며, 윤리적으로 문제 되는 행위로 인해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정치 지도자는 경계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우리의 정치적 선택은 단순히 외부의 상황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가치와 윤리적 기준을 세상 속에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입니다. 거짓과 탐욕, 아만이 가득한 지도자를 지지하는 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진실과 청렴, 자비라는 가치와 불일치를 일으키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그리고 스스로의 내면을 닦아가는 구도자로서, 우리는 어떤 리더가 우리 사회를 진실과 윤리, 그리고 자비의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마음의 눈으로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한 표, 우리의 목소리는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조용한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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